[투자Note] 주식 리서치

일본, 기준금리 올려도 엔화가 약한 이유: BOJ가 시장을 설득 못한 순간

alphanote 2025. 12. 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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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잃어버린 30년’ 탈출 신호일까?

요즘 뉴스를 보면 일본 금리인상 얘기가 계속 나온다.
BOJ 기준금리가 0.75%까지 올라왔고, 일본 10년물도 2% 수준까지 올라왔다. '일본 금리=0%' 가 기본값이었던 나라에서 이런 숫자가 나온다는 게 꽤 낯설게 느껴진다.
 
이게 유독 기사화가 많이 되는 이유는 -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엔화가 흔들리고, 엔캐리 포지션이 재정리되면서 자금 흐름이 흔들리고, 그 충격이 환율과 주식시장으로 전이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작년 8월에 일본 금리인상으로 한 번 겪었듯이, 일본은 워낙 낮은 금리와 엔캐리 구조가 오래 누적돼 있던 만큼, 작은 변화에도 시장 반응이 빠르고 예민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BOJ의 금리 정상화가 왜 다시 시장의 화두가 됐는지, 엔캐리 청산 공포가 이번엔 왜 상대적으로 조용했는지, 그럼에도 불구, 엔화가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뭔지, 결국 일본이 움직일 때 왜 한국이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지를 흐름으로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본은 왜 ‘제로금리’에 갇혔고, 왜 이제서야 빠져나오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았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복잡한 이야기다.

출발점은 1990년 초 버블 붕괴였고, 그 이후 디플레가 구조적으로 굳어지면서 일본 경제는 사실상 제로금리에 묶여 살아왔다.
 
1980년대 일본은 과열 그 자체였다.
제조업 호황에 금융 완화가 겹쳤고, '땅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동시에 치솟았고, 자산 가격 상승이 또다시 신용 팽창을 부르는 전형적인 버블 구조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런 과열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BOJ가 금리를 올리며 신용을 조이기 시작하자, 자산 가격은 빠르게 무너졌다. 자산 가격이 폭락하자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기업은 투자를 멈췄으며, 은행은 대출에 극도로 보수적으로 변했다. 다들 “성장해서 벌자”가 아니라 “일단 버텨서 갚자”는 쪽으로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서 경제는 회복의 속도를 잃기 시작했다.

 
여기에 디플레이션이 얹혔다.
디플레는 단순히 물가가 안 오르는 문제가 아니라, 기대 자체가 망가지는 현상이다. '내일이 더 싸질 것' 이라는 생각이 굳어지면 소비는 자연스럽게 미뤄지고, 기업은 가격을 올리지 못하며, 임금도 정체된다. 그러면 다시 소비가 약해지고, 이 흐름이 반복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금리를 조금만 건드려도 경제가 바로 꺾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오랫동안 올리지 못했던 이유다.
 
아베노믹스는 바로 이 디플레 기대를 깨기 위한 시도였다. 대규모 양적완화, 엔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는 통화 정책, 그리고 “일단 돈이 돌게 만들자” 는 메시지가 핵심이었다. 성장의 질보다도, 먼저 심리를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오랜 기간 초저금리와 약한 엔화에 익숙한 나라가 됐다. 그리고 이 구조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일본을 자연스럽게 ‘펀딩 통화’ 의 위치로 밀어 넣었다.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가능했던 배경도 결국 여기서 만들어졌다.
 
 

금리 인상 →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은 초저금리와 약한 엔화에 익숙한 나라가 됐다. 문제는 이 구조가 일본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 나라' 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엔화를 빌리고,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 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엔캐리 트레이드다.

 
그래서 일본 금리는 일본 내부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자금의 조달비용, 다시 말해 레버리지의 바닥을 결정하는 변수에 가깝다. BOJ가 조금만 움직여도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엔캐리 트레이드: '금리' 만큼 중요한 '환율'

엔캐리의 수익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핵심은 금리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첫째, 일본 금리가 낮으니 빌리는 비용이 싸다. 
둘째, 엔화가 약하면 약할수록 나중에 되갚을 때 유리하다.
그래서 엔캐리 포지션이 진짜로 흔들리는 순간은 BOJ가 금리를 올렸을 때가 아니라, 그 금리 인상이 ‘엔화 강세로 이어지느냐’ 에 있다.
 
펀딩 통화가 강해지면 레버리지는 자동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레버리지를 줄일 때 시장은 보통 팔기 쉬운 자산부터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형주나 아시아 위험자산이 먼저 흔들리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왔다. 작년 8월이 대표적인 예다.
 
(8월 5일 일본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코스피가 하루만에 8.8% 급락했으며, 16년 만에 가장 큰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일본의 니케이 지수 또한 같은 날 12%를 하락하며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일일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번 금리 인상은 왜 작년처럼 시장을 흔들지 않았을까

작년 8월에 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건, 여러 조건이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이다.

일본의 움직임이 시장 입장에서는 ‘기습’ 에 가까웠고, 마침 글로벌 위험선호도도 이미 꺾여 있던 시점이었다. 이런 구간에서는 레버리지가 유난히 예민해진다. 작은 신호에도 포지션이 한꺼번에 줄어들기 쉽다. 
 
반면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고 생각한다.
BOJ가 금리를 올릴 거라는 기대가 이미 시장에 깔려 있었고, 실제 인상 이후에도 “인상 속도를 급하게 가져가진 않겠다” 는 메시지가 함께 나왔다. 금리 인상 자체보다, 그 이후의 경로에 대해 시장을 안심시키는 쪽에 가까웠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여전히 남아 있는 금리 격차다.
일본 기준금리가 0.75%까지 올라왔지만, 미국과의 금리 차이는 여전히 크다. 조달 환경이 당장 엔캐리 포지션을 전면적으로 무너뜨릴 정도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엔캐리 청산은 스위치처럼 한 번에 꺼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대부분은 속도와 환율 움직임이 맞물릴 때 파동처럼 나타난다.

이번에는 그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도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반응했다.
 
 

금리를 올렸는데도 엔화가 약한 이유

이게 이번 국면에서 제일 헷갈리는 포인트다.

그런데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시장은 금리 인상 ‘한 번’보다, 그 다음을 더 본다. 

금리를 올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얼마나 더 올릴 건지, 그리고 그 속도가 어떤지다. 즉, 0.75%라는 숫자보다 '여기서 계속 오를껀지, 아니면 유지될건지' 가 환율을 더 움직인다.
 
이번에는 인상 이후 가이던스가 꽤 애매했다. 그래서 엔화도 생각만큼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물가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물가는 여전히 3%대인데, 정책금리는 0.75%다. 실질금리는 아직도 낮다. 금리는 올랐지만, '엔화를 들고 있을 이유' 가 확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재정 문제까지 겹친다 - 일본 정부는 여전히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대규모 추경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고 있다. 11월 21일, 일본 정부는 고물가 대응 및 경제 회복을 위해 21조3000억엔(약 200조원) 규모의 경제 대책을 확정했다.
 
국채가 많이 풀리면 금리는 오른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문제는 이 금리 상승이 성장 기대 때문이 아니라, 국채 물량과 재정 부담 때문에 붙는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읽힐 때다.

이런 경우엔 금리가 올라도 통화가 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이 불안한데 금리만 오르는 상황으로 해석되면서, 엔화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USD/JPY 6개월 차트

 
그래서 이번 국면에서는 금리는 올랐는데, 엔화는 강해지지 않았고, 엔캐리 포지션도 생각보다 조용하게 유지되는 흐름이 나온 것이다.
 
 

엔화가 흔들리면, 원화는? 

요즘 원화 움직임을 보면, 엔화랑 거의 같이 움직이는 구간이 꽤 길었다.
흔히 말하는 엔–원 커플링이 반복해서 나타난 셈이다.
 
이 커플링은 우연이라기보다는 구조에 가깝다 - 글로벌 자금 흐름에서 엔화와 원화가 비슷한 위험자산 바구니로 묶이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수출 제조업 비중이 크고, 해외 투자·차입에 민감하다. 미국 금리와 글로벌 유동성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래서 글로벌 위험선호가 한쪽으로 쏠릴 때는, 개별 국가 펀더멘털보다 리스크 온·오프가 먼저 작동한다. 이런 국면에서는 엔화든 원화든 같이 밀리거나, 같이 반등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만 중요한 건, 이 커플링이 항상 유지되는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이벤트가 붙으면 흐름이 갈라진다 - 대표적인 게 엔캐리 청산 국면이다.
엔캐리 포지션이 줄어들면, 빌린 엔화를 갚아야 하니 엔화 쪽에는 강세 압력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레버리지를 줄이는 과정에서 시장은 보통 팔기 쉬운 자산부터 정리한다.
이때 자주 선택되는 시장이 한국이다. 한국 주식을 팔고 나가려면 원화를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든다.
결국 원화를 팔고 외화를 사게 되고, 이 순간 엔화는 강해지는데 원화는 약해지는 디커플링이 나타난다.
 
반대로, 한국 시장 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이면 엔화가 강해질 때 원화도 같이 강해지는 커플링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엔–원 관계는 언제나 환율 그 자체보다 수급과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그럼 한국도 같이 금리를 올려야 할까?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국 금리 얘기로 이어진다.
문제는, 한국은 금리 하나로 상황을 정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금리를 올리면 환율 방어에는 도움이 된다.
엔–원 커플링이 강해지는 국면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 속도를 늦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가계부채 민감도가 너무 크다.
0.25% 인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자가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줄고, 소비가 줄고, 자영업과 부동산부터 바로 압박이 온다. '환율을 지키자'로 시작한 선택이 내수와 자산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기도 쉽지 않다.
내리면 경기는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수입물가가 다시 자극받는다.

한국은 특히 부동산이 예민하다. 인하가 경기 회복이 아니라 자산가격 자극으로 먼저 번지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 환율과 자금 흐름만 보면 금리를 올리고 싶은데,, 부채와 내수를 보면 올리기 어렵다..
  • 경기만 보면 금리를 내리고 싶은데,, 환율·물가·자산시장을 보면 내리기도 어렵다..

이 상태에서 일본이 금리를 올리고, 엔캐리 포지션이 흔들리는 국면이 오면 한국은 선택지가 더 좁아진다.
원래도 어려운 판에 외부 변수까지 동시에 들어오는 셈이다.
 
 

마치며

일본 금리 인상은 일본만의 ‘정상화 이벤트’로 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과 연결돼 있다.
엔화, 엔캐리 트레이드, 원화, 그리고 한국 금리까지 하나의 흐름 안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국면에서 중요한 건 ‘일본이 금리를 올렸느냐, 안 올렸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지, 환율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급이 어디로 쏠릴지다.
 
엔캐리 이슈를 볼 때 중요한 건 공포 그 자체보다, 한국이 금리와 환율 양쪽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 국면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일본발 변수 하나하나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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